노무현 대통령님, 편히 쉬소서 / 배용환 슬퍼마라,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세상 빛을 다스리다 잠시, 부엉이의 울음을 잊었습니다 유년의 꿈이 이런 거였다면 차라리, 어둠을 택하겠습니다 온 정열 바쳐 불을 밝혔습니다만 목청껏 부엉부엉, 소리쳤습니다만 세상이란 것이 귓구멍을 싸막고 사는 자들이 너무 많아 내 가슴에 비수로 꽂혀버렸습니다 그래서 부엉이가 되기로 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, 슬픔을 곱씹으며 부엉이바위에 섰습니다 칡넝쿨 같은 세상은 부엉이 바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먼저 죽어서라도 기어이 기어이, 이 신새벽을 깨우고야 말겠습니다 님이시여 야금야금, 어둠을 깨물어 주소서 봉하산 부엉이의 이빨로 이 땅을 깨물어 주소서 나폴나폴, 아카시아꽃잎처럼 절벽을 날아서라도 이 땅을 흔들어 주소서 잡목 숲 우거진 생의 골짜기마다 도사린 늑대들의 눈빛 번뜩이는 모진 세월의 지껄임들 앞에 기어코 잠든 새떼의 노랫가락, 들려주소서 하지만 남은 자의 슬픔은 어찌하시렵니까 봉하산에 어린 입술들은 미처, 볼 새가 없었습니까 우주가 무너져내리는 이 고통을 참아야만 합니까 남은 자들의 몫이라 여기겠습니다 남은 자들의 할 일이라 여기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임
장마전선 / 배용환 내 그림자를 지우려 마구 퍼붓는 물대포는 누구의 사주인가 누가 뭐래도 나의 역사는 지우지 못할 터 낡은 몸 홍수에 떠밀려 부서질망정 난 버리지 않으리, 이 땅에 심어놓은 뿌리의 그림자만은 결코 놓치지 않으리 작고 부르튼 주먹의 불끈 쥔 힘 움켜 쥔 햇살을 감히 누가 끌테면 꺼보시라 동해의 햇살은 다시 뜨는 법 저 바다를 향한 도사림과 흐름의 이치를 알진데 비 바람에 떠밀려온 하찮은 몸짓일지라도 뜨거웠던 시절을 기억조차 못하리요 내 몸 산산이 부쉴 듯 밀어닥치는 바람 앞에 이제 남은 건 사람의 몫, 떳떳이 촛불 밝히리니 흐린 날이여 쏟아내는 울음이여 그만 그치소서 먹구름 속에서도 세월의 비바람은 불고 또 불어 버림받은 목숨 / 배용환 커피가 내 입맛 밖이다 짜증을 타서 구겨 던졌다 아직은 뜨거운 종이컵, 쓰레기통 아래 꺾인 허리춤으로 뿜어내는 한숨이 뽀얗게 운다 끝내 마음 다 열지 못한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부비면서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울다 지친 일회용 마침표처럼 누웠다 파견 노동자였던 친구의 자살 전 임시직 딱지 촘촘한 얼굴에 잔뜩 고였던 코피가 발등에 뚝, 떨어진다 타살이다
생강의 생각 / 배용환 내 뚱단지 같은 아집을 탓하지 말라 켤코 실없이 시들진 않을 것이다 부글부글 끓는 세상에 과감히 몸 바쳐 진을 빼서라도 기어코 살 맛을 짜내고야 말겠다 상실의 흔들리는 상 바닥에 조아려 생의 참맛을 드릴지니 암흑 속에 잠든 생각을 캐내어 적절히 내 육신 짓이겨 실컷 우려드시라 이 기나긴 기다림의 숭엄이 황혼 앞 물마루처럼 부풀었다 꺼지긴 싫어 이 땅에 묻힌 피와 땀의 끈덕진 역사 앞에 내 속을 다 녹이고야 떠나겠다 하늘 향해 한 술 두려움 없도록