장마전선 / 배용환
내 그림자를 지우려
마구 퍼붓는 물대포는 누구의 사주인가
누가 뭐래도 나의 역사는 지우지 못할 터
낡은 몸 홍수에 떠밀려 부서질망정
난 버리지 않으리, 이 땅에 심어놓은 뿌리의 그림자만은
결코 놓치지 않으리
작고 부르튼 주먹의 불끈 쥔 힘
움켜 쥔 햇살을 감히 누가
끌테면 꺼보시라
동해의 햇살은 다시 뜨는 법
저 바다를 향한 도사림과 흐름의 이치를 알진데
비 바람에 떠밀려온 하찮은 몸짓일지라도
뜨거웠던 시절을 기억조차 못하리요
내 몸 산산이 부쉴 듯 밀어닥치는 바람 앞에
이제 남은 건 사람의 몫, 떳떳이 촛불 밝히리니
흐린 날이여
쏟아내는 울음이여 그만 그치소서
먹구름 속에서도 세월의 비바람은 불고 또 불어
버림받은 목숨 / 배용환
커피가 내 입맛 밖이다
짜증을 타서 구겨 던졌다
아직은 뜨거운 종이컵, 쓰레기통 아래
꺾인 허리춤으로 뿜어내는 한숨이
뽀얗게 운다
끝내 마음 다 열지 못한
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부비면서
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
울다 지친 일회용 마침표처럼 누웠다
파견 노동자였던 친구의 자살 전
임시직 딱지 촘촘한 얼굴에 잔뜩 고였던 코피가
발등에 뚝, 떨어진다
타살이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