독감 / 배용환
허술한 경계를 틈타
적들이 쳐들어 왔다
누런 군화발자국 카랑카랑 찍을 때 마다
지휘부는 더듬거렸고
심장부가 점령당하고 말았다
성냥탑처럼 일순간 무너져내리는 존재
슬픔으로 포장된 가치 안에
한숨의 목멘 고백 자욱한 이 거리에서
뭉크의 구두처럼
헐어버린 뼈의 층계들 헐떡일지라도
난 쓰러지지 않겠다 새벽을 움켜쥐고 기어이
낡은 기침을 깨우고야 말겠다
꽃제비처럼 떠돌다 지친 내 의식을 일으켜
찰떡 같은 가래와 부딪치겠다
끈질긴 저주가 포고 없이 닥칠 때 마다
이 악물고 피눈물로 뜨겁게 지킨 땅
이대로 가볍게 묻힐 수는 없어
콜록이는 뿌리 앞에
떳떳한 울음 맘껏 쏟아내겠다
괘씸한 독감의 총알 앞에
짤막한 생의 힘 한껏 쏟아내겠다
별빛이 쏟아내는 장대비를 당당하게 맞을 만큼